카츠 탑 에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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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경주마. 1981년 클래식 경주 2관마.
2. 혈통[편집]
부마 옐로우 갓은 영국산 말로 현역 12전 5승 후 아일랜드에서 종마로 활동하며 2000기니 스테이크스, 아이리쉬 2000기니 우승마를 배출했고 1974년 일본에 수입되었다. 일본의 주요 자마로 1978년 사츠키상 우승마 판타스트(ファンタスト), 1981년 오카상 우승마 브로케이드(ブロケード)가 있고 BMS 산구마로 야에노 무테키가 있다.
3. 생애[편집]
3.1. 커리어[편집]
사백유성에 웅장한 마체를 지녀 마주 카츠모토 마사오가 구입하고 카츠(勝), 탑(Top), 에이스(Ace)가 어울린다며 카츠 탑 에이스라는 경주마명을 붙여주었다. 1980년 7월 데뷔전에서 마토바 히토시가 기승해 2착, 2번째 경기에서 3마신 차로 첫 승리를 따냈다. 이 후로는 골막염으로 몸상태가 좋지 않은 가운데 2경기에서 패배했다. 도쿄의 린도상에서 2승째를 따냈고 마스자와 스에오로 기수가 바뀐 아사히배 3세 스테이크스에서 10착으로 대패하고 사사침 치료를 받으며 휴양에 들어갔다.
1981년 2월 첫 경기였던 바이올렛상에서 4착 후 발열로 스프링 스테이크스를 회피했다. 이 때까지 카츠 탑 에이스는 800만 이하 조건마였지만 한신 3세 스테이크스 우승마 서니 시불레트, 키사라기상 우승마 리드 원더, 신잔 기념 및 마이니치배 우승마 히로노 와카코마등 유력마들이 부상으로 회피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츠키상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기수 마스자와 스에오가 사츠키상에서 사쿠라 오세이를 기승하게 되었고 경기 10일 전까지 카츠 탑 에이스의 기수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마방의 업무를 대행하고 있던 조교 조수 후지사와 카즈오는 대체 기수를 찾던 중 경마 기자의 추천을 받고 오사키 쇼이치를 기수로 선택했다. 오사키 쇼이치는 그 때까지 팔대경주 4승[2] 을 기록한 기수였는데 원래 사쿠라 오세이를 기승할 예정이었지만 마스자와가 선택되면서 사츠키상에 자리가 비었던 터였고 카츠 탑 에이스의 기승의뢰를 받게되자 "그런 말도 있었나" 하며 맡았다고 할 정도로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사츠키상 경기 전날 유력한 우승 후보였던 산에이 솔론이 인대염으로 경주를 회피했다.
사츠키상에서는 17마리 중 16번 인기라는 그야말로 무명마, 하지만 마번 1번을 배정받고 좋은 스타트를 끊으며 선두로 치고 나갔다. 전반 1000미터를 62.1초의 슬로우 페이스로 이끌며 도주, 직선주로에서 쫓아온 11번 인기 롱 미러에 목차로 선두를 지켜내고 사츠키상을 제패했다. 기수 오사키 쇼이치는 인터뷰에서 "설마 이긴다고는......, 단지 절호의 1프레임이었기 때문에 몸을 던져 도망쳤을 뿐" 이라고 대답했고 레이스 후 진영에서는 "이긴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깜짝 놀랐다" 고 웃으며 답했다. 대회 단승 배당은 69.2배, 프레임 별 연승복식은 66.5배로 당시 사츠키상에서 역대 2번째로 높은 기록이었다. 이어진 NHK배에서는 사츠키상 우승이 플로크라는 생각에 겨우 5번 인기에 그쳤으나 산에이 솔론에 이은 2착을 기록하며 실력은 어느정도 입증했다.
그리고 도쿄 우준에서는 27마리 중 3번 인기로 조금 더 높은 기대를 받게 되었다. 생산지였던 사마니쵸에서는 모두 TV를 보고 응원해 경기 중에는 인적이 끊겼다고 한다. 3번이라는 역시 좋은 번호를 배정받고 스타트, 도주하는 말을 앞에 둔 2번째 집단에 자리 잡고 최종 코너에서 안쪽 코스를 파고 들어 최종 직선에서 선두로 나섰고 바깥 쪽에서 매섭게 추격해 온 산에이 솔론에 코차로 버티며 카츠 탑 에이스의 승리가 결정되어 더비를 제패하고 클래식 2관을 달성했다.
이 후 홋카이도에서 휴양 중 굴건염이 발증했고 가을이 되자 악화되어 킷카상을 포기하게 되었다. 복귀를 위해 온천 치료등을 시도해보았지만 결국 1982년 8월 은퇴를 결정했다.
3.2. 종마 생활[편집]
은퇴 후는 총액 1억 5000만엔의 신디케이트가 짜여져 니시호로베츠의 동부 종마센터에서 종마가 되었지만 자마성적이 좋지 못해 신디케이트는 해산하고 사실상 종마 은퇴가 되어 1990년 8월에 JRA가 공로마로서 매입했다. 이 후 럭키 룰러, 프레스 토코, 야마노스키와 함께 종마로서 한국에 기증되어 고양시 원당목장에 연결되었다. 이듬해 봄에 제주도에서도 종마생활을 했지만 가을이 되어 발병한 고관절염이 악화되어 10월 16일 쇠약사했다. 일찍 죽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경주마 등록을 한 자마는 5마리 뿐이었고 승리마는 1마리였다.
4. 여담[편집]
- 비인기 말이 사츠키상과 더비를 따 낸 공통점 때문에 서니 브라이언이 카츠 탑 에이스의 재래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부상으로 킷카상에 못나가고 은퇴하는 것까지 같게 되었다.
5. 경주 성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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